그녀는 겨울의 바다를 닮았다 -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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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겨울의 바다를 닮았다 - 하편

‘뭘까. 도대체 뭐 하자는 거지.’



한참 샤워 중인 윤재는 여전히 고민에 빠져 있었다.

설영과 모텔에 왔고, 계산도 그녀가 했다.

그리고 그녀는 먼저 샤워를 하고 나온 뒤 샤워를 하지 않으려는 자신을 억지로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삼십 년 넘게 살면서 딱 한 번 있는 일이다.

삼십 년에 한 번이면 없으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설영의 행동들이 윤재는 쉬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도대체 뭘까?

뭔가 사건을 만들어 돈을 뜯으려는 꽃뱀 같은 걸까?

아니면 자는 틈에 지갑을 훔쳐 도망치는 도둑?

혹시 약에 취해 자고 일어나면 장기가 없어지는 상황?

물줄기를 맞으며 온갖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윤재는 이윽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비록 오늘 반나절이었지만 그녀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윤재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친 뒤 옷을 입고 나온 윤재의 눈에 설영의 모습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샤워가운을 걸치고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그녀.

샤워가운은 아까부터 입고 있었기에 적응이 됐지만, 막상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윤재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화장실에서 나온 윤재를 발견한 설영이 텔레비전을 끄며 몸을 일으켰다.



“샤워하고 옷을 또 입었어요? 그러고 자게요?”

“예. 전 원래 이러고 자서.”



말을 하며 윤재는 방구석에 놓여있는 소파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소파에서 잘 요량이었다.

설영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런 윤재의 의도를 원천 차단했다.



“불편하게 소파에서 잘 생각이면 제가 바닥에서 잘 거예요!”



막 소파에 올라가려는 윤재가 어정쩡한 자세로 설영을 바라봤다.



“네, 네?”

“그러니까 침대로 와서 자라구요.”

“침대엔 설영 씨가 계시잖아요.”



설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근데요? 누가 옆에 있으면 못 자는 스타일?”



“아니 그 얘기가 아니 잖...!”



윤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설영이 다가와 윤재를 막무가내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침대로.

설영은 윤재를 침대에 눕히곤 자신도 따라 옆에 누웠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두 사람.

조용한 가운데 설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불편해요?”

“예.”

“뭐가 불편한데요?”

“그냥 옆에 설영 씨가 있으니까.”

“그게 왜 불편해요?”



문답의 쳇바퀴다.

이런 식이면 쓸데없는 논쟁의 소모전일 뿐이었다.

참지 못한 윤재가 몸을 일으키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옆에 누워 있던 설영이 윤재의 몸에 올라타 앉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말없이 바라봤다.

침대에 누워 있는 윤재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설영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설영은 긴 흑발을 길에 늘어뜨린 채 윤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윤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안 한다면서요.”



윤재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그에 비해 설영의 목소리는 대조적일 만큼 또렷했다.



“제가 뭘 하려는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지, 지금 하려는 거.”

“제가 아까 안 한다고 한 건 지금 하려는 짓이 아닌데요? 제가 언제 아까 섹스라고 딱 잘라서 말했나요?”



설영의 입에서 섹스란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횟집에서 이어 또 다시다. 윤재가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뭐가 말이 안 돼요. 그냥 저랑 편하게 하면 되는 거예요. 섹스.”



또 섹스.

오히려 윤재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그 말 좀, 좀!”

“윤재 씨 서른은 넘으셨을 거 같은데 섹스란 말에 얼굴을 붉히시네. 아 혹시 아직 한 번도?”

“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 엄청 많이 해봤거든요?”

“그럼 그 엄청 많은 횟수 중에 오늘 한 번 추가 된다고 뭐 별다른 일이 있겠어요? 그리고.”



설영의 시선이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윤재의 시선도 그녀를 따라 내려갔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윤재의 아랫도리 부분이었다. 어느새 발기한 모양이었다.

당황한 윤재가 몸을 일으키며 설영을 옆으로 밀었다.



“이, 이건 그냥 육체적 반응일 뿐. 아, 아무튼 전 안 돼요!”



침대에서 몸을 돌려 앉는 윤재를 보며 설영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핫! 아니 이거 무슨 남녀가 바뀐 것도 아니고. 왜요?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건데요?”

“전 여자친구도 아닌 여자랑 막 하고 그런 남자가 아닙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요!”

“푸핫!”



설영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윤재가 고개를 돌려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한다.



“정말이에요! 살면서 그런 적 한 번도 없거든요?”

“오-. 순정파?”



비꼬듯 놀리는 설영의 말에 윤재는 결국 그녀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소파에 가서 몸을 눕혔다.

하지만 설영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기요.”



윤재는 대답이 없다. 설영과 계속 대화해봐야 말려들 뿐이니까.

설영이 끈질기게 윤재를 불러댔다.



“저기요. 저기요. 저기요. 저기요. 저기.”

“아. 왜요!”



윤재가 결국 고개를 돌려 설영을 바라봤다. 설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사귀면 되는 거네요?”



윤재가 소파에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어이없는 표정으로 설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언제 봤다고 우리가 사귀어요.”

“많이 봤는데. 청량리역에서 표 살 때. 기차에서 맥주 마실 때. 바닷가에서 사진 찍을 때.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윤재는 아침에 청량리역에서 표를 살 때의 일을 떠올렸다. 어떤 여자를 스쳐 지나가긴 했는데 인상까지 명확히 기억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윤재가 말이 없자 설영은 계속해서 의견을 피력했다.



“봐요. 엄청 많이 봤잖아요. 아니 소개팅에서 잠깐 보고 그날 사귀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라고 못 사귈 게 어딨어요?

우린 그 소개팅한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봤는데.”



묵묵히 설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윤재가 이윽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니요. 전 그럴 수가 없어요.”

“왜요?”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그 사람 생각이 나고, 그 사람 때문에 힘이 들고, 그 사람 때문에 눈물 흘릴 정돈데.

근데 그런 제가 다른 사람이랑 사귄다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설영의 입이 벌어졌다. 너무나도 꽉 막힌 윤재의 모습에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설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곤 윤재에게 말했다.



“그럼 평생 다른 사람 안 만나는 거네요?”

“그, 그건 아니죠.”

“아니 왜요? 말이 앞뒤가 다르잖아요. 다른 사람 사귀는 건 아니라면서요.”

“그런 얘기가 아니라 그녀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뭐 그런 거!”

“그 기간이 얼만데요?”

“모, 모르죠.”

“대략 얼마나 걸릴 거 같아요?”

“뭐. 한 반년 이상은 지나야.”

“푸하, 푸하하핫!”



갑자기 설영이 큰 소리로 웃어 젖혔다. 윤재가 어리둥절하게 바라봤지만, 그녀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간을 웃은 설영이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윤재에게 말했다.



“아니 왜 이렇게 답답해요. 한 반년? 푸하핫. 아니 무슨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반년 지났는데 안 잊히면요. 그다음엔 어떻게 하실 건데요?”

“더 기다려야겠죠. 잊힐 때까지.”



설영이 더 못 참고 침대에서 뛰어 내려온다. 그리고 소파로 다가가 앉아 있는 윤재를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답답한 소리 좀 그만해요! 윤재 씨는 할 만큼 한 거예요! 그 사람 때문에 힘들고, 울고 뭐 그랬다면서요. 그럼 된 거 아니에요? 더 이상 뭘 해야 하는 건데요.

떠나간 그 사람 때문에 더 이상 뭘 해야 완전한 이별이 되는 건데요?”



갑자기 높아진 그녀의 목소리에 당황한 윤재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예? 아, 아니 전.”



“지금 제가 보기엔 윤재 씨 모습이 어떤지 알아요? 그냥 착한 척, 자기가 피해자인 척, 세상에서 나만 힘든 척, 나만 로맨티시스트인 척,

나만 감상적인 척! 그런 척을 못 해서 안달인 사람으로밖에 안 보여요!”



윤재의 표정이 황당해졌다.



“아, 아니 아깐 멋있다더니?”

“적당히 해야죠. 적당히!”



설영은 그렇게 목소리를 한껏 높이곤 잠시 후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렇게 예쁜 여자가 꼬시면 좀 넘어가 주고 그럴 줄도 알아야지.”



결국 그거였다.

어이가 없어진 윤재는 벌떡 일어나 설영을 방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놀란 설영이 다급히 외쳤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여기 제가 돈 냈어요!”



하지만 윤재는 막무가내였다. 기어코 설영을 방 밖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는 윤재에게 설영이 다급히 외쳤다.



“옷 이라도 좀!”



설영의 말은 문이 닫히며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윤재는 결국 그녀를 방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샤워가운 차림으로.

정신없던 설영의 이야기에 혼이 빠져 그녀를 내보낸 윤재였다. 하지만 금세 이성을 되찾았다.

그녀의 말대로 이 방은 그녀가 계산했고, 밖에 나간 그녀는 지금 샤워가운 차림이었다. 나가도 윤재 자신이 나가야 옳았다.

문밖은 조용했다. 윤재는 슬그머니 문을 열어 밖을 보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설영이 잽싸게 치고 들어와 문을 닫고 서 버렸으니까.

윤재는 그녀를 내쫓은 일에 대해 사과를 하려 했다. 하지만 설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뭐, 뭘요?”

“오늘 재미없었어요?”



그럴 리가 없다.



“재밌었어요.”

“즐겁지 않았어요?



당연한 얘기다.



“그럼요.”



“그렇죠? 윤재 씨 오늘 재밌었고 즐거웠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저도 윤재 씨처럼 얘기 잘 통하는 남자 만난 적 없고, 윤재 씨처럼 지난 사랑에 눈물지을 줄 아는 가슴 따뜻한 남자 본 적 없어요.

서로 재밌고 즐거웠잖아요. 그럼 사귀면 되는 거잖아요. 뭘 자꾸 어렵게 생각하고 그래요?”



겨울 바다에서 사진을 찍던 설영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윤재는 그녀가 겨울 바다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해 보이는 그런 겨울 바다 말이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그녀는 쉬지 않고 거세게 풍랑이 몰아치는 거친 겨울 바다였다.

대답이 없는 윤재대신 설영이 말을 이었다.



“제가 별로라 그래요?”

“아니요.”

“다행이네요. 그럼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는 말 들어보셨죠?”

“네.”

“윤재 씨 헤어져서 힘들었잖아요. 그 사람 때문에 혼자 여행 올 정도로. 혼자 괴로워할 정도로. 혼자 울 정도로. 많이 힘들었잖아요.”

“”

“제가 잊게 만들어 드릴게요. 그 지나간 사람.”



윤재는 가만히 설영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여자가 있었던가. 아니 이런 여자 자체가 드물다.

윤재도 그녀와 있었던 오늘이 무척이나 재밌었다.

기차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있었고, 혼자 겨울 바다를 찍는 그녀의 옆모습은 눈이 시릴 만치 아름다웠다.

또 서로의 닮은 점을 발견해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더없이 즐거웠다.

설영의 말이 맞았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

오늘 윤재는 헤어진 여자친구보다 설영을 더 많이 생각했다.

그럼 결론은 이제 나왔다.



“알았어요.”



윤재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설영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뭘 알았다는 거죠?”

“설영 씨랑 사귀, 아니 저랑 사귀어주세요. 설영 씨.”



설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약간 씁쓸한 것이었다.

윤재가 그 미소를 눈치를 챌 틈도 없었다. 설영이 윤재를 껴안으며 키스를 해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키스는 격렬했다.

상대를 터트릴 듯이 끌어안은 채 서로의 입술과 혀를 탐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윤재와 설영은 침대로 쓰러졌다.

설영의 손이 윤재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자, 윤재도 설영의 옷을 벗겼다. 하지만 설영은 옷이랄 것도 없었다. 샤워가운 하나뿐이니까.

설영은 금세 알몸이 되었다.

윤재는 눈이 부셨다. 그만큼 설영의 몸은 새하얗다. 가느다란 목선도, 예쁘게 큰 가슴도, 잘록한 허리도, 쭉 뻗은 다리도.

윤재가 뚫어지게 보고 있자 설영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만 봐요.”

“아. 너무 예뻐서요.”

“윤재 씨도 얼른 벗어요.”



그녀의 말에 윤재도 얼른 옷을 벗었다.

알몸이 된 두 사람이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서로의 몸이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웠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상대의 뜨거운 체온을 느꼈다.

잠시 후 윤재의 몸이 설영의 안으로 들어갔다.



“하읍-!”



설영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은 윤재가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쾌감에 젖기 시작했다.



“하아, 하음, 하응!”



겨울 바다에서 하얀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윤재가 움직일 때마다 설영의 새하얀 가슴이 부드럽게 일렁였다.

설영의 가느다란 팔이 윤재를 끌어안았다.



“아, 아응, 하음! 아. 윤재 씨!”



윤재와 설영의 사랑은 길게 이어졌다.

오랜만에 여자를 안은 윤재에게 설영은 그야말로 여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고, 안으로 들어가고, 안으로 들어가길 여러 번 반복했다.

설영도 두 팔 벌려 윤재를 안으며 받아준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새벽이 왔다.

윤재와 설영의 달뜨던 숨소리도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나란히 알몸으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윤재의 손이 가만히 설영의 손을 잡았다. 설영도 윤재의 손을 부드럽게 마주 쥐었다.

윤재가 설영을 돌아봤다. 그러다 의외의 장면을 목격했다.

설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침대로 떨어지고 있던 것이다.

놀란 윤재가 몸을 일으켰다.



“설영 씨 왜 울어요?”



설영이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눈물이 나니까요.”

“눈물이 왜 나는데요?”



설영이 미소 지었다.



“저 원래 눈물이 잘 나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설영이 윤재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미안해요.”

“뭐가요?”

“제가 너무 억지로 조른 거 같아요.”

“아뇨. 아뇨. 저도 좋아서 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섭섭하잖아요.”

“윤재 씨.”

“네?”

“오늘 즐거웠다고 했죠?”

“네.”



“저도 오늘 즐거웠어요. 기차표 살 때, 또 맥주 마실 때 본 사람을 바닷가에서 다시 본 것도 재밌었고, 회에 소주 마신 것도 즐거웠고,

영화 이야기 한 것도 재밌었어요. 윤재 씨랑 바다 거닐며 얘기 나눈 것도. 그리고 이렇게 함께한 것도 다 즐거웠어요.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요.”



그녀는 유독 진심이란 걸 강조했다. 하지만 윤재가 그에 대해 이상하다고 느끼기도 전에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윤재 씨는 정말 착하고 좋은 남자예요.”



윤재가 설영을 떼어 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설영 씨도 최고의 여자입니다.”



잠시 멍하니 윤재를 바라보던 설영이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미소 짓는 설영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어두웠다. 하지만 윤재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두 사람의 새벽이 지나갔다.



*



눈을 떴을 때 아찔하게 희고 아름다운 여자가 눈앞에 있을 거란 영화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재가 눈을 떴을 땐 창가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이 텅 빈 침대 시트만을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윤재가 몸을 일으켰다.



“설영 씨?”



아무 대답이 없다.

화장실을 열어 봐도 보이지 않고, 문 앞에 놓여 있던 그녀의 신발도 사라졌다.

어디라도 나간 걸까.

윤재는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열두 시가 되어 프런트에서 퇴실 전화가 올 동안에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윤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전화번호도 물어보지 못했는데.”



설영은 사라졌다.

진짜 영화 같은 일이었다.



*



윤재가 들른 곳은 횟집이었다. 어제 설영과 먹었던 그 작은 횟집 말이다. 윤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설영에 대해 물었다.



“저기 혹시 어제 저 기억나세요? 저랑 같이 왔던 여자 여기 안 왔었나요?”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윤재는 바닷가로 갔다. 어제보다 날씨가 맑아지긴 했지만 겨울 바다는 여전히 거칠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설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윤재는 멍한 눈길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세게 맞은 거 같은 충격에 사로잡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윤재는 생각했다.

자신이 뭔가 잘못이라도 한 걸까.

하룻밤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그녀가 그렇게 떠난 걸까?

해변에 박힌 듯 서 있는 윤재의 머릿속에 온갖 상상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다 쓸데없고 부질없는 상상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사라졌다.

세차게 밀려왔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저 겨울 바다의 파도처럼 윤재의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

.

.

한 달이 지났다.

윤재의 생활은 망가져 있었다. 지선 때문이 아니라 설영 때문이었다.

그녀와의 강렬했던 하루가 윤재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 것이다.

단순히 설영과의 섹스가 이유는 아니었다.

그날 그녀와 웃고 떠들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던 그 순간, 순간들이 윤재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괴롭혔다.

집에서 술을 마시며 뒹굴기나 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윤재라 더욱 힘들었다. 괜히 이별을 두 번 겪은 거 같은 생각마저 든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던 윤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울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깎지 않아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으로 덮인 얼굴은 폐인이란 표현이 어울렸다.

윤재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자 이대로 지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전원을 언제 켰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윤재는 대충 세수를 한 뒤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의 이런 음울한 감정이라면 괜찮은 글이라도 쓸 수 있으리란 기대로.



*



항상 가던 집근처 카페에 자리 잡은 윤재는 심호흡을 하고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다짐을 했다.

글을 쓰자.

지금의 이 말로 표현 못할 감정들을 글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자.

굳게 각오를 다진 윤재의 손이 키보드를 누르려는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염 기른 거 안 어울린다.”



윤재의 손이 그대로 굳었다.

한 달 전 자신의 귀에 속삭이던 여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윤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설영이 서 있었다.

그때와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윤재의 입술이 떨렸다.

심하게.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뭐, 뭐, 뭐, 뭐예요?”



설영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저 미소 띤 얼굴로 윤재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녀가 아무런 말이 없자 윤재는 오싹한 기분까지 들었다. 정말 그녀가 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윤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어, 어, 어떻게 된 거지? 뭐, 뭐야.”



그제야 설영도 입을 열었다.



“왜 그래요?”



전혀 아무렇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는 윤재와 비교해서 너무나도 차분했다.

윤재가 어이없는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왜, 왜 그러긴요. 가, 갑자기 여긴 어떻게.?”

“여기가 뭐 윤재 씨의 비밀 공간이라도 돼요? 그냥 지나가다가 윤재 씨 보이기에 들어온 건데?”



말을 마치고 앞자리에 앉는 설영을 보며 윤재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무, 무슨. 말도 안 돼.”



윤재와 설영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둘의 표정은 너무나도 달랐다.

한쪽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한쪽은 말할 수 없이 온화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온화한 표정으로 윤재를 지켜보던 그녀였다.



“음 한 달 정도 됐네요. 잘 지냈어요?”



당연히.



“못 지냈어요.”

“왜요?”



윤재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설영이 재차 물었다.



“화났어요?”



이번에도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자신의 의사 표현을 했다.

설영은 피식 웃고는 질문을 바꿨다.



“삐졌어요?”



적중한 모양이었다. 이번엔 윤재의 대답도 행동도 없으니까.

설영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삐졌네. 어떻게 풀어주지.”



“”



“이번에 러브레터 재개봉하는데 같이 보러 갈래요?”



윤재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인다. 설영의 말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설영의 미소가 짙어졌다.



“보고 싶죠?”

“”

“보러 가요.”



설영이 끊임없이 공격했지만 윤재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 윤재를 잠시 바라보던 설영은 상체를 한껏 숙여 테이블에 붙이고는 윤재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보러 가요. 보러 가요. 네?”



나름대로 애교 섞인 설영의 행동이었다.

이렇게 된 거 설영은 끝까지 윤재를 조르기로 했다.



“보러 가요. 보러 가요. 보러 가.”



윤재가 입을 열어 설영의 말이 끊어졌다.



“보면요.”



명확한 뜻이 담겨 있지 않은 윤재의 말에 설영이 반문했다.



“네?”

“보면 뭐해요. 어차피 설영 씨는 그때처럼 또 사라질 거잖아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윤재의 눈엔 눈물까지 고인다.

설영은 먹먹한 눈길로 그런 윤재를 바라보다 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윤재의 손을 꼬옥 잡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땐 미안했어요. 그냥. 그냥 제 마음을 좀 수습하느라 그랬어요.”

“뭘요? 무슨 일인데요.”

“그런 게 있어요. 여자의 비밀 같은 거.”



얼버무린 설영은 윤재의 곁으로 더욱 붙어 앉으며 말했다.



“아무튼 이번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윤재 씨 앞에서 사라지지 않을게요.”

“”



윤재의 마음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설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교환 안 했죠? 교환할까요? 아니 교환해요. 우리!”



그래도 윤재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설영은 기다렸다.

묵묵히.

잠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설영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무언가 입을 열려 할 때 윤재의 손이 움직였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쓱 민 것이다.

설영이 앉아 있는 쪽으로.

윤재의 행동을 본 설영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서로의 번호를 교환하고는 윤재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약속한 거예요?”



밑도 끝도 없는 설영의 말에 윤재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뭘요?”

“같이 영화 보러 가기로 했잖아요!”



설영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윤재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대응했다.



“아아. 그거예요? 난 또 사귀자는 줄 알았네.”



장난이었다. 윤재도 이제 기분이 풀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설영에게 장난을 친 것이다.

하지만 설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웃지도 않고 무표정이다.

놀란 윤재는 그녀가 화난 거 같아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아니 그냥 장난.”



그때 설영이 씨익 웃으며 윤재의 말을 끊었다.



“우리 그때 사귀기로 했는데 뭘 또 사귀어요? 우리가 언제 헤어졌었나요?”



윤재는 설영을 멍하니 바라봤다.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여자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진심을 말하고 있다고.

지금 설영의 환한 얼굴은 한 달 전 잠들기 전 보였던 어두운 얼굴과 확실히 달랐다.

이 한 달 내내 윤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 그녀의 그 침울했던 마지막 표정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마음에 쌓여있던 무언가를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자신에게로.

윤재는 그렇게 확신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안 헤어졌었죠.”



윤재가 웃는 얼굴로 인정하자 설영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친구 씨.”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렇게 마주 웃었다.

.

.

.

epilogue.

3일 전.





지선은 앞에 앉아 있는 설영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락이 안 돼서 일이 잘 안된 줄 알았어요.”

“잘 됐어요.”

“그럼 그 사람이랑 잔 건가요?”

“예.”



설영의 단호한 대답에 지선은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렇군요. 제가 무척 어려울 거라고 했는데.”

“맞아요. 어려웠어요.”

“어떻게 해내셨는지 궁금하지만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그만둘게요. 자 여기 약속한 보수예요.”



지선이 핸드백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카페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리고 설영 쪽으로 쓱 밀었다.

하지만 설영은 봉투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물었다.



“그 전에 말씀해주실 게 있잖아요.”

“뭐였죠?”

“제가 이 일을 끝내고 나면 말씀해주신다고 하셨죠? 이러시는 이유에 대해. 저도 이제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당사자의 입에서 들어보고 싶어요.”

“아. 그랬었죠.”



지선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윤재 오빠와 전 3년을 만났어요. 제가 스물일곱 살 때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처음 만났죠.

요즘 남자답지 않게 착하고 순박한 모습에 끌려서 사귀게 되었어요. 근데.”

“”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오빠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죠.”



지선은 작게 한숨을 내신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전 결혼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예전부터 일찍 결혼해 아기를 가지고 가정을 꾸리고 싶었지만 여의치가 않았죠.

그러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씩 결혼하자 저도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서른을 앞두자 어떤 절박함까지 느껴지더군요.”



설영은 계속되는 지선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솔직히 윤재 오빠랑 결혼하고 싶었어요. 저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남자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싶어질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윤재 오빠는 제가 결혼 얘기만 꺼내면 항상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식이었어요.

모아둔 돈 한 푼 없는 작가 지망생인 자신이 저를 불행하게 만들까 봐 무척 미안해하더군요. 언젠간 꼭 성공해 최고의 결혼식을 올려주겠다면서.”



“그래서 다른 남자를 만나신 건가요?”



당돌한 설영의 질문이었지만 지선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들으셨군요. 예. 맞아요. 돈도 많고 나이도 있어서 바로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전 그렇게 헤어졌지만 윤재 오빠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어떤 죄책감까지 들었죠. 오빠의 성격을 잘 아니까, 저를 잊지 못하고 힘들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너무 답답했어요.

그래서 오빠가 저를 잊게 해주고 싶었어요. 저 같은 나쁜 여자 잊고 새로운 삶 시작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어요.”



“저랑 자면 잊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신 거군요.”

“예. 그 오빠를 잘 아니까요.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는 절대로 자지 않을 성격인 거 제가 아니까요.”



그때 설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날 무척이나 까다롭게 굴던 윤재의 모습이 떠올라 실소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지선은 차를 마시느라 그 미소를 보지 못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어쨌든 대단하시네요. 역시 윤재 오빠의 취미와 비슷한 분을 찾은 게 적중했군요.

그래도 막상 이렇게 되니까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네요. 자 이제 받으세요.”



지선이 하얀 봉투를 더욱더 설영 쪽으로 밀었다.

하지만 설영은 그 돈을 받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었다.

먹먹한 눈길로 하염없이.

잠시 후 설영이 봉투를 다시 지선 쪽으로 밀었다.



“돈은 됐어요.”

“네?”

“한 가지만 알려주세요.”

“뭘요?”

“지금 윤재 씨가 사는 집을 알려주세요.”



전혀 예상치 못한 설영의 말이었다.

지선이 의혹 가득한 눈길로 설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왜요?”

“제가 윤재 씨 좋아하니까요.”

“네?”



설영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설영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눈에선 주룩주룩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고민 많이 했어요. 윤재 씨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괜히 나쁜 짓을 한 거 같아 마음이 너무 괴로웠죠.

그러던 어느 날 혼자서 영화를 보는데 저도 모르게 윤재 씨가 떠오르더라고요. 같이 웃으면서 나눴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막 떠오르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내가 그 사람 좋아하게 됐구나 하고. 윤재 씨 여린 사람인데. 나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할까.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을까.

너무 미안해요. 흑!”



지선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저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마음이 진정되기만을 기다려주었다.

잠시 후 설영이 양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곤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찾아가려고요. 찾아가서 사과하고 제대로 만날 거예요. 윤재 씨는 충분히 괜찮은 남자니까요.”



지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잘 알죠. 괜찮은 남자인 거.”



지선의 말이 끊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얼굴 가득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알려드릴게요.”



설영은 윤재의 주소를 핸드폰에 입력했다. 그리고 그 핸드폰을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품에 꼭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전 이만 가볼게요.”



카페에서 나가려는 설영의 뒤에서 지선이 말했다.



“둘이 잘 어울려요.”



설영이 돌아보자 지선이 덧붙였다.



“부디 둘이 잘 되길.”

“네. 잘 될 거예요.”



설영은 미소를 지었다.

겨울 바다를 닮은 미소였다.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겨울 바다 말이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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