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닮은 아내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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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닮은 아내 - 상편

요즘 들어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너무나 짧게 지나간다고 한다.

매 해마다 조금씩 심해지는 것 같고, 전년보다 올해가 올해보다 내년이 더 심해질 거란 생각에 마음이 괜히 심란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봄이 그렇게 사라져 간다는 것이 더욱 더 아쉽게 느껴지는 5월의 어느 따뜻한 봄날의 오후,

따스한 햇살에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며 내 무릎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하는 사람인 아내,

은주의 잠들어 있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가올 여름을 떠올린다.

내 아내 은주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뜨거운 여름이 곧 다가옴을 기다리며..



대학시절 처음 만난 은주의 모습은 정말 통통 튀는 그런 아이였다.

새빨갛게 물들인 짧게 자른 거친 커트 머리에 안 찢어진 곳을 찾는 게 더욱 쉬울 것 같은 청바지는 나에게 몹시 충격적인 모습 그 자체였다.

그와 대조적으로 지금은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그 당시엔 갓 시골에서 상경해 잔뜩 촌티를 흘리며 어리버리한 모습을 하고 있던 날 보던 은주도

훗날 말하길 저게 사람인가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첫 입학식 날 서로에게 엄청난 임팩트를 심어준 우리 둘은 금세 친한 단짝 친구가 되었다.

서로 상극이라 전혀 통할 것 같지 않았던 우리였지만, 단 한 가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

우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조금씩 서로에게 빠져들고 동화되어 갔다.



흔히들 사랑하면 닮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학과 내에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통통 튀던 매력을 발산하던 은주는 점점 정상적인 패션과 헤어로 변해갔고,

누구보다 촌스러움이 묻어나던 나는 어느새 흔히 지나다니는 서울 남자1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쯤 가장 듣던 말이 남매가 아닌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분명 생긴 모습은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데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묘하게 닮아가고 있었고, 우리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리가 기분 나쁘지 않고 좋았다.



“넌 부끄럽지? 사람들이 자꾸 우리가 닮았다고 해서...네가 훨씬 예쁜데..”

“아니, 난 기분 좋아. 그게 왜 부끄러워?”

“정말..”

“어..정말이지..”



은주의 까칠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는 따뜻한 마음,

그 마음을 보고 은주에게 점점 빠져들 수 있었고 연애를 하면서도 변함없이 날 먼저 생각해주고 배려해주는 은주를 보며

어느 순간 난 은주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이어온 8년간의 연애,

은주는 내가 군대를 갔다 오고 다시 복학을 하고 취업을 하는 동안, 먼저 졸업을 하고 취업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던 내 옆에서 꿋꿋이 힘이 되어 줬다.

그리고 취업한 지 1년이 되고 조금씩 더워지던 늦봄의 햇살 좋은 날,

난 은주에게 청혼을 했다. 평생을 나와 함께 해달라고..



8년간 연애를 하면서 처음 본 은주의 눈물, 은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청혼을 받아주었고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겠다는 다짐과 함께은주를 내 품에 꼭 끌어안았다.



“사랑해..평생 변하지 않을게”

“나도....나도 그럴게..”



이미 서로의 집에서 모두 알고 지내던 사이에, 아버지가 40살의 나이에 늦둥이로 낳은 우리 집에서 결혼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청혼을 하고 얼마 되지도 않은 뜨거운 여름날 우리는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흔히 정말 피곤하다는 결혼 전 준비과정에서 사소하게 몇 번 다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이 진행됐고,

결혼식, 그리고 신혼여행까지 모든 게 너무나 완벽했다.



은주는 나에게 완벽한 아내였고, 은주도 나에게 완벽한 신랑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그 마음을 영원히 간직하자고 신혼여행 마지막 날 밤 은주와 사랑을 나누며 우리는 약속했다.



“졀대 변하면 안 돼..절대..”

“그럼..변하지 않을게..”



그렇게 일주일간의 달콤한 신혼여행을 마치고 다시 밟은 고국의 땅,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여전히 서로를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싶었지만 서로를 향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디자인 회사에서 입사 5년차에 대리를 단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은 아내는 정말 밤낮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고,

 IT회사에 이제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넘어 신입티를 벗고

일에 적응해 나가는 나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늘 일에 치여서 항상 피곤에 지쳐 있는 아내와 나의 모습,

가끔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건가라는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아내와 내가 내린 결론은 이제 우리는 애도 아니고 결혼도 한 마당에 빼도박도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솔로라면 어디 도망이라도 갈 텐데 우린 틀렸어..”

“그래..대학시절 은주 네 성격이면 아마 다 때려 치고 어디 외국으로 도망 갔을거야”

“어어..아마도...근데 지금은 나한테 그런 패기는 없다..”

“크크...슬프네..”

“뭐가 슬퍼..현실이 그런 걸..”

“그렇지..”



그저 현실을 인정하며 씁쓸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그것이 현실적으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었다.



그렇게 모든 게 귀찮아지고 매사가 피곤에 찌들어있던 어느 날,

우리가 연애한지 9주년이 되는 날, 나는 그 날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던 기념일이었다.

은주의 생일, 내 생일을 빼먹은 적은 있더라도 평생 절대 잊지 말자고 했던.

우리에게 결혼기념일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서로가 생각했던 그 날을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밤12시가 넘어 귀가를 하며, 집 안에 밝게 켜져 있는 불빛을 보면서도 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왜 은주가 아직 안자고 있을까란 생각밖에..



그리고 그 이유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며 식탁에 다다라서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식탁 위에 올려 져 있는 조그만 생크림 케이크 위엔 다 타서 없어진 초가 불을 피웠다는 흔적을 남기며 있었고,

은주의 앞에 있는 비어있는 와인잔과 함께 비어있는 와인병이 은주의 지금 기분이 어떨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난 은주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 애꿎은 내 발끝만 쳐다보며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한참동안 이어진 침묵, 그것은 깬 건 은주였다.



“괜찮아..왜 그러고 있어. 죄인같이, 얼른 씻고 자. 늦었네”

“은주야..”

“어..무슨 말 하려는지 알 거 같아. 근데 진짜 괜찮아. 자자 늦었다...”



은주의 그 말에 비로소 난 힘겹게 고개를 들어 은주를 바라봤고, 은주의 입 꼬리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눈가엔 촉촉하게 눈물이 맺힌 체로..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불과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은주에게 했었던 청혼에서 처음 우는 모습을 보이던 은주가 울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내 실수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은주를 울리고 만 것이다.

은주는 말없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날 보며 환하게 웃어주고 날 꼭 끌어안아 주었다.



“조금 실망하긴 했는데 괜찮아. 맘 쓰지 마. 나한테 그동안 충분히 잘했잖아. 정말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먼저 잘게...”



은주는 내 볼에 살며시 입을 맞추고 먼저 침실로 들어갔고, 난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내 옆으로 보이는 달력에 쳐져있는 빨간색 동그라미..

한 달 전이 기억이 났다.

조금 있으면 우리 9주년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니까 정말 즐겁게 보내자고..

그렇게 은주에게 호언장담했던 그 날이 비로소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보...멍청이...나란 인간은 하아.....’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법,

이미 12시가 넘은지 한참이 지난 후였고 우리의 9주년은 그렇게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은주는 그 날 이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나에게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는지 말이 부쩍 줄어 있었고,

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아무런 말이 없는 은주를 보며 불안함에 어찌해야 될지 몰랐다.

그런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보내다 난 깜짝 이벤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금요일 저녁, 평소보다 조금 일찍 팀장에게 일이 있어서 오늘은 일찍 가봐야겠다고 말한 후

7시가 되자마자 칼퇴근을 하고 회사 근처의 꽃집에서 은주가 가장 좋아하는 프리지아 꽃과 생크림 케이크를 사들고 은주의 회사로 향했다.

회사 앞에 차를 대고 은주가 아직 퇴근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거 같아 전화를 걸어보니 바쁜 건지 신호는 계속 가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많이 바쁜가..’



일하는데 불쑥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아닌 거 같아 일단 차 안에서 기다라며 애꿎은 시계만 계속 쳐다보는데 이제 겨우 8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평균적으로 10시나 되야 퇴근하는지라 아직 2시간 가까이나 남은 것이다.

은주를 빨리 놀래 켜주고 싶은 마음, 1분 1초가 1시간처럼 너무 길게 느껴지는 지루함에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은주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은주의 회사 앞에 한 대의 차량이 서고, 그 곳에서 익숙한 여자의 실루엣이 내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나의 아내 은주였다.



은주를 내린 그 차량은 조금 더 가서 주차장으로 들어갔고, 은주는 회사 앞에 서서 차를 운전한 사람을 기다리는 듯 했다.

잠시 후 은주보다 몇 살은 어려보이는 남자가 은주에게 다가왔고,

남자는 자연스레 은주에게 팔짱을 끼려고 은주의 팔 안쪽으로 집어넣었고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남자의 손은 은주의 가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은주는 남자가 팔짱을 끼려고 하자 신경질적으로 팔을 뿌리치며 남자를 노려보았고,

남자는 익숙하다는 듯이 그런 은주의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저 새끼는 대체...’



뭔가 하는 짓이 바람둥이 같은 녀석이 난 몹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계속해서 은주에게 껄떡댄다면 두고 볼 수 없을 거 같아 차에서 내려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능글맞게 웃고 있던 남자는 갑작스레 은주의 입술을 덮쳤고, 난 그 자리에 얼음이 되어버렸다.



‘저....저 새끼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로 당장 달려가 놈을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몸은 완전히 굳어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고

그 순간 강렬한 마찰음과 함께 남자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조금 떨어진 거리였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남자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은주는 몹시도 화난 표정으로 남자에게 한바탕 무어라 잔뜩 말들을 쏟아내고 회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남자는 뺨을 어루만지며 은주가 이미 떠난 그 곳에 멍하니 서서 은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난 그런 남자를 뚫어질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저걸..죽일 수도 없고...’



하지만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지라 지금 가서 남자를 두들겨 패는 건 뭔가 모양새가 이상했기에

아직 풀리지 않는 화를 꾹꾹 눌러 담고 차로 돌아와 음악을 크게 틀고 애꿎은 핸들에 주먹질을 했다.



‘개새끼..죽일 놈....’



남자가 은주의 입술이 닿던 그 모습이 생각나 좀처럼 화는 풀리지 않고,

정말 미친놈처럼 경적을 울려대며 한참을 핸들을 두들기고 나자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때, 은주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난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은주는 전화했었냐며 나에게 물었고 난 아까 본 건 말하지 않고 좀 전에 회사 앞에 도착했는데 잠깐 나올 수 있냐고 말했다.

은주는 잠시만 기다리라 말했고, 조금 후 회사에서 나오는 은주의 모습이 보였다.

은주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내 경적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걸어왔고 차에 올라타더니 조수석에 있는 케이크를 보고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어..이거 뭐야?”

“선물...”

“뭐야...내가 신경 안 써도 된다니까..그 때 그 일 때문에 그래?”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아..이것도..”



뒷좌석에 있던 프리지아 꽃다발이 그제야 생각이 났고, 은주에게 내밀자 은주는 조금 놀랐는지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네..”

“어어..프리지아..”

“응..좋아..예뻐..”

“꽃말 기억해?”

“어...기억나..순결..천진난만 이었나?”

“응..”

“그래..자기랑 잘 어울리는 그런 꽃말이었어...”



내가 첫 데이트 때 선물해준 꽃, 프리지아

프리지아의 꽃말은 천진난만, 순진, 순결한 마음이다. 따스한 봄날에 가장 어울리는 꽃 프리지아,

그 꽃을 처음 은주에게 선물하고 그 날부터 은주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꽃은 프리지아가 되었다.

은주는 한참 프리지아 향을 음미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난 가볍게 은주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정말 계속 신경 쓰고 있었던 건 아니지..?”

“어..아냐.. 그냥 내가 요즘 너무 무신경 했나 싶어서..”

“어, 그건 조금은 맞는 거 같기도..”

“진짜? 그렇게 느꼈구나..미안..”

“아냐. 그냥 해 본 소리야. 그리고 미안하단 말 하지 마. 내가 말했잖아. 우리 사이에 미안할 게 뭐가 있냐고. 미안하단 말 싫어..”

“알았어..”

“조금만 기다릴래? 나 들어가서 금방 일 마무리 하고 올게”

“응..”



은주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추고 다시 회사로 들어갔고, 30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활짝 웃는 미소와 함께 나에게 달려왔다.

차 앞에 서서 밤공기를 맡으며 은주를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은주는 그대로 달려와 내 품에 꼭 안겼고 난 은주의 입술에 짧지만 진하게 입을 맞췄다.

은주는 두 눈을 꼭 감고 나와의 키스를 음미하고 있었고,

난 부드럽게 은주의 몸을 감싸고 부드럽고 촉촉한 은주의 입술에 장난스레 혀로 간질이다 살며시 눈을 뜨며 입술을 떼었다.



“헤...좋네..밖에서 키스하는 건 엄청 오랜만인 거 같아”

“어..그런 거 같네..”



그때, 멀리서 누군가 보고 있는 듯한 시선.

은주와 같이 있던 그 남자였다.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하며 주차장으로 걸어갔고, 은주의 말소리에 겨우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어딜 그렇게 넋을 놓고 봐? 내가 부르는 것도 모르고..”

“어? 아..미안..잠깐 다른 생각 좀 한다고..”

“이 봐.. 이 봐.. 나 만나러 온다고 회사 일 땡땡이 치고 와선 여기선 또 회사일 생각하는 거야? 울 남편 안 되겠네”

“아냐 그런 거, 얼른 가자”

“어어..말까지 돌리고 수상해...!”

“수상하긴 가자..”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는 은주를 차에 태우고 출발했지만, 은주는 계속해서 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냐니까?? 궁금해..”

“으휴..그 놈의 궁금증...아무 것도 아냐..아..그래..너네 회사 앞에 고양이 새끼 지나가는 거 같아서 본거야”

“고양이 새끼?? 울 회사 근처에서 한 번도 고양이 못 본 거 같은데..왠 고양이 새끼..?”

“아 몰라..내가 잘못 봤나 보지 뭐..”

“그런가..”



난 차마 아까 다른 남자와 키스를 하는 걸 봤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물론 남자가 제 멋대로 은주에게 입을 맞춘 것이지만..

어쨌든 은주가 먼저 말을 하지 않는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걸 굳이 파헤치고 싶지 않았다. 은주가 먼저 말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집에 들어오자마자 은주는 내 입술에 거칠게 입술을 맞추며 나를 침대로 끌고 갔다.

그리곤 평소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다르게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옷을 하나하나 벗기며 내 몸 구석구석에 키스를 퍼부었다.

덕분에 내 몸 여기저기에는 은주의 빨간 립스틱 자국이 새겨지고 있었고,

은주는 그 자국들을 보며 기분이 좋은 듯 배시시 웃으며 다시 한 번 내 입술에 진하게 입을 맞추고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 누웠다.



“벗겨줘...”



은주의 한 마디에 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은주의 옷을 조심스레 하나씩 벗겼다.

두 가지의 매력을 치명적인 여자, 은주는 연애초기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낮이면 정말 순수하고 천진난만하다가도 밤이면 누구보다 유혹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하는 그런 사람..

그런 은주의 매력적인 모습에 흠뻑 난 빠져들었고,

특히 밤에 날 유혹하는 은주의 매력적인 모습은 이미 9년이나 만나고 결혼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날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게 만들고 있었다.



“넌...날 너무 잘 알아..”

“잘 알지..내가 모르면 우리 남편을 누가 모르겠어...?”

“그렇지..”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진하게 입술을 맞추고 서로의 혀를 탐닉하며 뜨거운 체온을 나눴다.

완전히 벗은 은주의 몸이 내 몸에 닿는 느낌은 언제나 너무나 부드럽고 따뜻했고, 그 기분 좋은 느낌은 나를 항상 불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내 손은 자연스레 은주의 봉긋 솟은 뽀얀 가슴을 어루만지며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간질였고, 연갈색의 귀여운 은주의 젖꼭지는 빳빳하게 솟아올랐다.



“하아...하아.....”



은주는 얕은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내 손을 아래쪽으로 이끌었고, 내 손은 자연스럽게 잘 정리되어있는 까끌한 음모를 지나 갈라진 계곡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으윽....!”



아까보다 조금은 격해진 은주의 신음소리, 내 손은 은주의 갈라져 있는 계곡을 부드럽게 아래위로 움직이며 한 번씩 손가락을 안으로 조금씩 밀어 넣었고

그럴 때마다 안쪽에서 미끌한 애액이 흘러나왔다.



“하으음....”



은주는 항상 자극이 심해지면 이빨로 살짝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고 했는데 그 모습은 몹시도 자극적이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역시나 은주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신음을 참고 있었는데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오고

그럴 때마다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은주의 모습은 마치 날 유혹하는 듯 했다.



“하아...하아..”



조금씩 커져가는 은주의 신음소리, 난 은주의 다리를 살짝 벌렸고 늘 보지만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은주의 분홍빛 꽃잎이 드러났다.

은주는 손을 가져와 그 곳을 살짝 가리며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부끄러..”

“아직도...?”

“으응...”



난 그런 은주를 향해 미소 지어보이고 살며시 그 곳을 가리고 있던 은주의 손을 치우고 입술을 가져가 분홍빛 꽃잎에 살짝 입을 맞췄다.



“흐으음....!”



은주의 얕은 신음소리와 함께 내 혀는 은주의 계곡 아래에서부터 위로 살짝 핥아 올렸고,

순간 은주의 몸이 파르르 떨리며 짙은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흐으윽......!”



내 혀는 멈추지 않고 은주의 분홍색 꽃잎을 간질였고, 한 번씩 혀가 안쪽으로 쏙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은주는 몸을 크게 비틀며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아..하아아..”



점점 은주의 신음소리 주기가 짧아지며, 은주의 그 곳은 내 타액과 은주의 애액으로 번들거리고 있었고

난 그제야 커다랗게 발기한 내 물건을 한 번에 은주의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아흐으윽....!!”



은주는 격한 신음소리와 함께 내 몸을 꼭 끌어안았고,

난 은주의 몸을 같이 끌어안고 한참동안 은주의 안쪽 깊숙한 곳의 따뜻한 느낌을 만끽하고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하아..하아...”



내 몸의 움직임에 따라 은주의 입에선 달뜬 신음소리가 흘러나왔고,

내 손은 뽀얀 은주의 가슴을 꼭 거머쥐고 내 몸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은주의 그 곳에 내 물건이 마찰하며 찔꺽거리는 음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아..하아..좋아..사랑해..”

“하아..나도..나도 사랑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었고, 점점 내 몸의 몸놀림은 빨라졌다.



“하아..하아..하으윽...!”



점점 커져가는 은주의 신음소리와 함께 우린 절정을 향해 같이 치닫고 있었고,

은주는 살짝 동공이 풀린 눈으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사..사랑해...은주야...흐윽...”

“하으으윽.....!!”



은주와 진한 입맞춤을 하며 난 절정을 맞으며 은주의 안쪽 깊숙이 사정을 했고,

한참을 우린 서로의 입술에 뜨겁게 입술을 부비며 서로 격한 숨소리를 나누며 몸을 들썩였다.



“하아...하아...”

“하아..좋아...자기랑 하는 건”

“나도 너무 좋아...”



터질 것 같던 심박 수가 가라앉으며 거칠던 호흡도 점점 돌아오며 은주는 내 품에 꼭 파고들었고, 난 은주를 꼭 끌어안았다.



“이대로 자고 싶다..”

“자..”

“씻어야지..”

“괜찮아..”

“그럴까...”



내 품에 안겨 한참을 칭얼대던 은주는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고, 난 은주가 완전히 잠이 들 때까지 품에 꼭 끌어안아 주었다.





깜짝 이벤트의 효과는 충분히 잘 먹혔고,

은주와 나의 관계는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은주는 전처럼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나를 대했고, 난 비로소 그런 은주를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은주가 불행하다면, 행복하지 않다면 나 또한 그런 것이니..



회사일 때문에 그동안 바빴다고 할지라도 조금은 권태기 같기도 했던 우리의 관계는 다시 결혼 전처럼 조금은 돌아가 있었고,

가끔 있는 저녁이라도 함께 하며 주말은 최대한 시간을 비우며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뜨거운 한 여름에 태어난 사람, 은주의 생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실수하며 실망을 안겨줬기에 미리 선물도 사놓고, 서울 시내 최고급 호텔에 유람선까지 대여하고 난 그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철민 씨, 이번에 김 과장이 다쳐서 홍콩 출장은 철민씨가 가야 될 거 같은데”

“아..며칠 동안이죠?”

“보자...16일부터 19일까지, 4일이구만”

“어.. 알겠습니다”



다행히 은주의 생일은 20일이었기에 갔다 와도 은주의 생일을 챙겨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미리 준비도 이미 해 놓았기에..



은주는 갑작스레 출장을 간다는 말에 놀란 듯 했지만 19일까지라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내가 또 생일을 까먹은 건 아닌가하는 표정이었지만 본인의 말로 생일 전에는 꼭 와야 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워낙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





그렇게 다가온 4일간의 홍콩 출장,

홍콩에서의 별 탈 없이 순조롭게 진행이 잘 되었고, 난 어서 마지막 날이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다가온 출장 마지막 날, 4일간 햇빛만 쨍쨍하던 날씨는 오후부터 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아휴...4일간 더워 죽을 뻔 했는데 진작 좀 오지...’



비가 오자 청량한 느낌과 함께 더위가 조금 씻겨 내려가는 듯 했고, 찝찝하던 내 기분은 조금씩 좋아졌다.

그런데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며 조금 오다 말 것 같던 비가 어느새 계속 쏟아지고 바람도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날씨에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하니 떡하니 긴급속보로 나와 있는 태풍 북상..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끼며 공항에 전화를 해보니 대부분의 비행기가 결항이 되고 있었다.



“아냐..오늘 밤이 아니면 내일 오전이나, 오후에라도 타면...”





점점 비가 거세지며 어두컴컴한 밤이 되고 미리 예매해둔 저녁 비행기는 이미 결항이 됐고 다음날 오전까지 비행기 스케쥴도 모두 취소가 되고 있었다.

내 속은 이미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고,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었다.



2시간이나 잤을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지만 빗줄기는 조금도 줄어들어 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퍼붓는 비를 보며 이미 새까맣게 타고 남아있지 않은 내 속은 모두 재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원망스런 비는..오전이 지나고,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되도 그칠 기미를 하지 않았다.



‘하아...’



이제는 은주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못 간다고, 내일은 되야 갈 수 있다고..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날 기다리고 있을 은주에게 전화를 해야 했고, 난 힘겹게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신호음.. 하지만 은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아..멍청한 놈...이미 한 번 실수를 해 놓고....’



난 지금 은주의 마음이 어떨까 상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또 다시 계속해서 들려오는 신호음..하지만 여전히 은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4번, 5번, 이미 10번째 전화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은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얼마나 화가 난 걸까.. 내가 어떻게야 하는 걸까..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고, 신호음이 거의 끊어질 무렵 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살짝 혀가 꼬인 듯한 목소리, 평소의 은주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술 마셔?”

“응? 술? 어..마셨었어.. 마셨지”

“많이 먹었어...?”

“응. 응..좀 먹었어...어디야? 아직 안 왔어...?”

“하아...미안..”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은주의 목소리는 울먹거리기 시작했고, 난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두 번이나 이런 건 뭐라 변명을 할 여지가 없었다.



“아냐...안 오고 싶어서 안 온 것도 아니고..하아..”



울먹이는 목소리에 술을 많이 마신건지 은주의 목소리는 점점 알아듣기 힘들었고, 많이 취한 것 같아 은주가 몹시도 걱정이 됐다.



“밖이야? 얼른 들어가..많이 마신 거 같은데..”

“어? 뭐라고? 아냐..많이 안 마셨어..그치? 내가 얼마나 마셨지?”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 난 단번에 아내의 옆에 있던 그 남자를 떠올렸다.

한 번도 제대로 보지도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었지만 분명히 내 느낌은 그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보세요..은주야! 은주야!!”

“하으으음..머리야..하아..집에 갈래..하아..”

“은주야!! 은주야!!”



끊어져버린 은주의 전화,

난 미친놈처럼 계속해서 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은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카톡을 보내 봐도 1이란 숫자는 계속 사라지지 않았고,

이미 다 타버린 듯 했던 내 맘은 아직도 탈 것이 남았는지 계속해서 타들어갔고 불안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냐..침착해..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아무 일도..’



밖에선 계속해서 오던 비가 점점 잦아들고 있었고,

시간은 밤에서 새벽으로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고 있었다.



난 정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계속해서 몇 분마다 은주에게 전화를 했지만 은주는 단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은주야 아무 일 없지.. 그런 거지..나 혼자 그냥 불안해하는 거지..’



어느새 완전히 밝아온 아침,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다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서둘러 공항으로 가서 가장 빠른 서울행 비행기에 내 몸을 실었다.

나 혼자 착각한 것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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